수행 법문

마음공부하기 전과 후

석암 최영훈 2025. 2. 3. 20:13

달마대사 이입사행론 (二入四行論)

견성성불(見性成佛)로 들어가는 방법에 두 가지가 있으니

이치로 들어가는 이입(理入)과 수행으로 들어가는 행입(行入)이다.

▶"이치로 들어간다는 것은 소위 가르침(敎)에 바탕을 두고 근본(宗)을 깨닫는 것이다.

일체중생이 동일한 참성품(眞性,佛性)을 가졌으나 객진번뇌와 망상에 덮여서

참성품이 나타나지 못할 뿐이다. 이러한 가르침을 깊이 믿는 것을 이입(理入)이라고 한다."

그런데 물론 이치는 그렇다 하다라도 그런 방법으로 쉽게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조금 쉬운 마음공부의 길을 네 가지로 설명한 것이 사행(四行)이다.

후대의 선(禪)에서 말하는 직지인심(直指人心), 즉 법을 곧바로 가리켜 보이는 것,

이치로 진리를 곧바로 깨닫게 해주는 것이 이입(理入)이라면 달마대사는 사행(四行)도 말한 것이다

다른 선어록에서는 볼 수 없는,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는 매우 훌륭한 방편이라고 생각한다.

"이 수행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소위 네 가지 수행(四行)을 말하니

기타 나머지의 모든 수행은 다 이 가운데 들어 있다."

보원행 (報寃行)

"도를 닦는 수행자가 고통을 받을 때는 마땅히 스스로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나는 과거의 무수겁 가운데 근본(本,마음)을 버리고 지말(末,육진경계)을 쫓아

모든 육도의 생명을 받아 유랑하면서 수많은 원한과 증오를 일으켜 위해를 끼치기를 한량없이 해 왔다.

지금은 비록 이런 악을 범하지는 않지만 이것은 모두 전생에 지은 악업의 과보가 익은 것이니

천신이 준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이 준 것도 아니다. 그러니 이 고통을 달게 감수하여 원망하거나 다투지 않을 것이다.

이런 마음이 생겨날 때 바른 이치와 상응하여 원한을 녹이고 도(道)에 나아가기 때문에 보원행이라 하는 것이다."

마음공부 하기 전에는 '세상이 나를 힘들게 한다, 저 사람이 나를 괴롭힌다, 저 사람 때문에, 부모 때문에 괴롭다'

이렇게 남 탓을 하면서 살아 왔지만, 마음공부를 하다보면 그런 마음이 점차로 없어지게 된다.

그 누구도 미워하거나 원망하거나 탓하지 않는다.

괴로움의 원인을 밖에서 찾으면 나 스스로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힘을 잃게 되어 나약해지지만

그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으면 벗어날 수 있는 힘도 자신에게 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남에게 의존하는 나약한 존재가 아니라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아갈 수 있고

이러면 제대로 된 수행을 할 수 있는 마음의 토대가 갖추어지게 된다.

수연행 (隨緣行)

"나(我)라는 것은 본래 없으며, 업을 인연으로 고락을 받는 것은 모두 연(緣,조건)을 따라 생기는 것일 뿐이다.

훌륭한 과보인 영광과 명예를 얻을 때는 '이것은 과거의 업으로 인해 얻은 것일 뿐, 연이 다하면 다시 없어진다.

그러니 어찌 기뻐할 것인가?'라고 여긴다. 이처럼 얻고 잃음을 모두 연에 따라 맡겨 놓음으로써

마음으로는 늘어남과 줄어듦이 없어서 기쁨의 바람에도 움직이지 않고 담연히 도를 따른다."

주어진 인연을 좋다거나 나쁘다거나 생각해서, 거기에 '나'를 내세워 좋은 것은 더 취하려 집착하고

싫은 것은 더 밀쳐내려 애쓰지 않고 '조건 따라 자연스레 일어나는 일이로구나' 하는 것을 말한다.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인 연기법은 곧 무아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세상사 좋은 일 나쁜 일과 '나'라는 것도

모두 인연 따라 생겨나고 소멸하는 것이지, 내가 만들려고 기를 쓴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노력도 안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최선을 다해 살지만 주어지는 인연을 받아들이며 사는 것을 수연행이라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좋다 싫다'는 마음이 일어나도 되고, 하고 싶은 것은 더 해도 되고

하기 싫은 것은 안 해도 되지만, 결과는 내 소관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허용하는 것,

내가 원한다고 꼭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인연에 맡긴다는 뜻이다.

그래서 취사선택하지 않는다는 것은 '하되 함이 없이 한다'는 것이지

현실에 안주하여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이렇게 '집착 없는 열정으로, 정말 뒤끝 없이 쿨하게' 살면

그 삶이 얼마나 자유롭겠는가, 마음이 얼마나 가볍겠는가!

이건 해 본 사람은 안다.

무소구행 (無所求行)

"세상사람들이 오랫동안 미혹하여 곳곳에서 탐내고 집착하는 것을 구함이라고 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참성품을 깨달으니 이치로써는 속세를 떠나 있어 마음이 편안하여 아무것도 함이 없다.

모양을 따라 삶을 운행하지만 삼라만상이 다 공(空)이기에 아무것도 바라지도 않고 욕망하는 것도 없다.

공덕천(善,좋은 것)과 흑암녀(惡,나쁜 것)는 항상 서로 따르고 쫓는다는 사실을 안다.

삼계에 오래 머무는 것은 마치 불타는 집과 같고, 몸이 있으면 모두 괴로움이니 어느 누가 편안할 수 있겠는가?

이것을 요달하기에 육도의 존재를 버리고 생각을 쉬어 구하는 것이 없다.

경전에도 '구함이 있는 것은 모두 괴로움이고 구함이 없는 것이 즐거움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구함이 없는 것이 참으로 도의 행임을 알 수 있다. 이런 까닭에 무소구행이라고 하는 것이다."

보원행을 바탕으로 수연행을 실천하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무소구행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것도 마찬가지로, 구함이 없다고 해서 아예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구하되 구하는 바가 없다, 하되 하는 바 없이 한다'

최선을 다해서 하되 어디에도 머무는 바 없이 한다는 말이다.

마음공부를 하면 점차 이렇게 되어 가고 점점 익어가서 나중에는 정말 물 흐르듯 살아가게 된다.

도를 깨달아도 밥은 먹어야 하므로 생활은 영위해 나갈 수밖에 없어서 무언가는 하게 된다,

그러나 과도한 집착이 없으니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무리하지 않고 하게 된다.

그렇게 살면 인생이 참으로 가뿐해진다.

칭법행 (稱法行)

칭법행은 법과 하나 되는 행인데 "자성이 청정한 이치를 법이라 한다. 이 도리를 믿고 이해하면

모든 상(相)이 공(空)하여 번뇌에 물듦도 없고 집착도 없으며,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다.

지혜로운 자는 능히 이 도리를 믿고 이해하여 마땅히 법에 따라 행하여야 한다.

이것이 바로 칭법행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법에 따라 사는 삶을 의미한다.

우리는 그동안 '좋다 나쁘다'는 내 생각을 그대로 믿고 분별(分別)에 따르는 삶을 살아왔다.

좋은 건 더 취하려 집착하고, 싫은 건 더 밀치려 집착하여 그렇게 안 되면 괴롭게 살아왔는데

그런 게 바로 어리석은 중생의 삶임을 깨닫고, 생각 아닌 길, 분별 이전 자리

분별지가 아닌 무분별지(無分別智)라는 본성자리, 법(法)이라고 하는, 마음이라고 부르는

이 부처님의 진리를 내 삶의 중심에 놓고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이 칭법행은 네 가지 행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내 생각(분별)이 아니라 진리(법)를 중심에 놓고 살아가는 삶이다.

-법상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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