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 법문

참고 또 참아야

석암 최영훈 2025. 2. 5. 13:32

지금부터 해방 전일입니다. 어떤 신도가 내가 항상 다 떨어진 장삼을 입고
다니니까 모시장삼을 해 왔습니다. 내가 입을는지 안 입을는지
그것도 물어 보지 않고 또 스님네 여러분을 청량리 청량사에 청해 가지고
음식을 차려 놓고 대접을 합니다.


나는 무슨 사연인지도 모르고 따라가서 대접을 받았는데 나중에 장삼을
내 앞에 내 놓고 절을 하고 그럽니다. 그래도 나는 가만히 내 버려 두고
앉아 있었습니다. 스님을 새로 정하고 불명이나 하나 지어 달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나는 그리 해 준다는 말도 안 하고 안 해 준다는 말도 안 하고
가만히 앉아서 남의 말처럼 그것도 남의 말이니까 덤덤히 있으니
거기 같이 갔던 스님들이 화를 내고 야단났습니다.


대보살 신도가 와서 절을 하고 이러는데 본체만체하고 앉아 있으니
네가 뭐 그리 대단하냐는 겁니다. 자기들이 면구해서 못 앉아 있겠다는 겁니다.
그래도 나는 말도 안 하고 있습니다. 칼을 가지고 나를 찔러도
그건 자기네 일이고 내 일이 아닙니다. 그런 뒤에 나를 대단히 좋지 않게
여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인욕하는 것도 처음에는 힘이 들지만 이것도 자꾸 노력을 하고
무아의 도리를 닦아 나가면 도가 높아 지는데 따라서 힘 안들이고 잘됩니다.
그 전에 어떤 노장님이 인욕을 아주 참 잘해서 평생에 노한 얼굴 한번
안 한 분도 있습니다. 성나는 것만 참는 것이 아니라 아픈 것도 잘 참아서
평생에 노한 얼굴 한번 안 했습니다.
성나는 것만 참는 것이 아니라 아픈것도 참아야 하는데 몸을 톱으로 켜고
칼로 찌르더라도 아픔이 없는 경지에 도달해야 합니다.
그러나 법력이 아직 그렇게 되지는 못했지만 말만이라도
그렇게 할 수 있어야 발심한 불자입니다. 


내가 한 30년 전에 한겨울에 맨발로 짚신만 신고 다니며 방에 불도 안 때고
안국동 선학원에서 한동안 인욕공부를 하며 지낸 일이 있습니다.
요사이 추위는 30년 전 추위에 비하면 훨씬 덜 춥습니다.
그때 장안에는 선학원에 장사 중이 하나 나왔다고 떠들썩한 일이 있었지만
나는 그때 몸뚱이를 내 버리고 인욕하기로 작정했기 때문에
그대로 견디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참는 것도 석가모니부처님께서 5백생 동안 인욕선인으로 계실 적에
가리왕에게 사지가 찢겨질 때처럼 아무 생각없이 참을 줄 알아야 하고
또 제석천왕이 전당포라는 하는 나라의 고약을 가지고 와서 찢어진
육신을 완전하게 치료해 줄 그때에도 조금도 기쁜 마음을 내지 않으셨던
것처럼 참는 것 없이 참아야합니다.


이렇게 도할양무심의 경지에 도달하면 단순한 참음이 아니라 마음의
참 바탕자리를 튼튼하게 지키고 일체의 객관경계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참나' 의 진리를 체득했다는 뜻을 가진 인욕이 됩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득성어인의 '인'은 어긋나고 모순되고 거슬리는
경계를 잘 참고 성내지 않으며 좋다 싫다는 생각이 없어서 갚음이
없는 것을 말하며, 무생법인의 생멸이 없는 진리에 머물러서
그 마음이 도햘양무심으로 움직이지 않는 것을 뜻합니다. 




 -청담스님-